개요

도쇼다이지 절은 오늘날 나라시 교외에 위치하고 있으며 약 1250년전 나라가 수도였을 때 이 지역은 중심지였습니다. 759년, 당시의 천황이 덴무천황의 왕자인 니이타배친왕의 구택을 도쇼다이지 절을 건설하기 위해 주었습니다. 도쇼다이지라는 이름은 고승 간진이 중국 당나라에서 오셨다는 것과 절이 간진의 지도를 토대로 불교의 수행을 하는 장소로서 건립되었다는 것에 유래합니다. 도쇼다이지 절은 중국의 불교종파의 하나인 남산종에 의한 계율을 중심으로 교학에 힘쓴 일본에서 첫번째 율종사원이었습나다. 지금도 도쇼다이지 절은 일본율종의 총본산이라고 추앙되고 있습니다.
(사진: 간진화상좌상 비불, 일반공개는 6월초순의 며칠간)

도쇼다이지 절의 창시자인 간진은 중국 다이묘지 절의 고승으로 일본에서 중국불교의 계율을 가르치기 위해 쇼무천황에 의하여 초청되었습니다. 간진은 이 요청을 받아들여 일본으로 항해를 시도했습니다. 그러나 5번이나 거듭되는 항해의 실패로 인해 간진은 실명하는 등 12년에 걸친 고생끝에 마침내 나라에 도착했습니다. 일본에서는 수계를 할 수 있는 스님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간진은 도다이지 절 대불전앞에 계단을 세워, 쇼무 전천황, 코켄천황이나 일본의 많은 고승들에게 수계를 했습니다. 그 당시 일본은 서서히 불교국가의 형태를 갖추고 있었습니다. 간진의 도착이 일본의 역사를 크게 움직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간진의 업적은 일본의 불교와 문화에 큰 영향을 주었으며 오늘날에도 일본의 대공로자라고 기억되고 있습니다.

도다이지 절을 떠난 후 간진은 도쇼다이지 절을 건립해 763년 5월 6일, 76세로 돌아가실 때 까지 4년 동안 이 절에서 지냈습니다. 간진의 죽음을 예견한 제자들이 건칠기법으로 간진상(국보)을 만들게 했습니다. 현재 그 상은 도쇼다이지 절 미에이도 당에 모셔져 있으며, 6월6일(음력 5월6일, 간진의 기일)과 그 전후일을 포함해서 1년에 며칠간만 공개됩니다. 이 상 앞에 서 보면 참으로 깊은 감명을 받습니다. 일본의 불교문화는 간진시절에 가장 번창하여 그 당시의 고승의 이름은 많이 남아 있습니다만 그들의 묘의 대부분은 아직도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한편 간진의 묘는 도쇼다이지 절 경내의 동쪽 한정한 숲속에 있으며 1200년 이상 동안 끊임없이 참배되어 왔습니다.

긴 역사 속에 이 절도 많은 변천이 있었습니다. 그 당시 초기, 도쇼다이지 절 니시야마 주변에는 46원(院)이 있었으나 일본의 정치적, 문화적 변화에 인해 지금의 형태가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도쇼다이지 절은 현재 18개의 국보와 200개 이상의 중요문화재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 절은 바로 8세기, 덴표문화를 대표하는 절로 다른 곳과 비교할 수 없는 중요한 절인 것은 말할 나위도 없습니다.

가람

남대문은 간진화상의 사후 1200년을 계기로 해서 1960년에 재건되었습니다. 남대문 뒤쪽에는 일본에서 현존하는 최대규모의 덴표건축인 금당이 있습니다. 1200여년 전에 지어진 이 금당의 간소한 아름다움은 유명한 옛 시에 많이 읊어져 있습니다. 기둥이 늘어선 모습은 멀리 그리스의 파르테논 신전을 떠올리게 합니다.
(사진: 금당 나라시대 8세기)

8세기, 불교사원은 종교적인 수행 장소였을 뿐 아니라 학습을 하는 곳이기도 했습니다. 강당은 주변에 있는 절들의 집회나 강의장소로서 사용되었습니다. 강당은 간진이 도쇼다이지 절을 건립했을 때 궁정에서 헤이조쿄에 있는 히가시초슈덴을 하사 받아 이곳으로 이축한 것입니다. 130헥타르에 이르는 헤이조쿄궁터는 풀밭이 되었습니다만 강당은 여기에 이축되었기 때문에 오늘날까지 남았습니다.
(사진: 강당 덴표시대의 장엄한 건축)

금당과 강당 사이의 동쪽에는 경내에서 유일한 중층건조물인 고루(사리전)가 있습니다. 고루는 13세기에 세워져 매년 5월19일에 우치와마키(부채 뿌리기)라는 행사가 실시됩니다. 이 의식은 가쿠조스님을 추선하기 위해 13세기에 시작된 것입니다. 가쿠조스님의 가르침을 받은 훗케지 절의 비구니들이 영전에 둥근 부채를 올렸습니다. 구후부채는 고루위에서 뿌려서 사람들에게 주어지게 되었습니다. 간진화상의 개산기사리회(6월 5-6일), 석가염불회(10월21-23일)와 더불어 이 절의 대표적인 법요입니다.

고루 동쪽의 크고 긴 건물은 13세기에 지어진 히가시무로이며 본래 이 절에서 배우는 많은 승려들의 승방이었습니다. 그 남쪽의 반은 라이도 법당으로 개축되었습니다.

승방과 라이도 법당 동쪽에는 두개의 아제쿠라 양식의 건물(남쪽의 경장과 북쪽의 보장)이 있습니다. 어느 쪽도 756년에 세워진 도다이지 절 정창원의 아제쿠라보다 오래된 것입니다. 아제쿠라 동쪽 가장자리에는 이 절의 귀중한 회화나 공예품들을 보존, 수장하기 위해 새로 세워진 신보장이 있습니다.

간진의 묘 서쪽에 있는 큰 건물인 미에이도 당은 서기 1000년경의 헤이안시대 귀족의 저택과 그 생활양식을 잘 나타냅니다. 오늘날 간진화상의 좌상이 미에이도 당에 안치되어, 히가시야마 가이이화백이 12년에 걸쳐서 1981년 완성한 장벽화와 함께 매년 6월6일을 중심으로 한 며칠간 일반공개됩니다. 또 중추 명월 밤에는 차를 간진화상좌상에게 올리고, 경내에는 많은 촛불이 켜집니다.

이 절 서쪽에는 계단이 있습니다. 3단의 계단은 돌로 만든 것이고 자주 8세기에 간진이 도다이지 절에서 만든 흙계단과 비교됩니다. 이 절에는 옛날에 동탑이 있었습니다만 1802년 낙뢰로 인해 소실되었습니다.

이 페이지는 도쇼다이지 절의 개략과 가람에 대해서 간단하게 소개한 것입니다. 이 절에는 국보나 중요문화재로 지정된 건축물이나 소유물이 많이 있으나 여기서 그 모두를 소개할 수 없습니다. 경내는 약2시간으로 산책을 할 수 있으며, 어느 계절에 찾아도 계절마다 아름답습니다.